한국의 화폐
한국의 화폐 : 상조조합을 중심으로
옥당박물관에 오시면 고려시대의 화폐부터 조선시대, 대한제국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화폐의 역사를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통보
조선시대
작성자
gtiadmin
작성일
2016-12-28 17:46
조회
538
조선통보(朝鮮通寶, Chosuntongbo)
조선통보하면 누구나 하나쯤은 소유하고 싶어 하는 팔분서체 엽전이 있다. 서체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에 반해서 그 인기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높다. 조선통보에 대한 여행을 떠나보자. 조선왕조는 고려말기부터 사용되던 저화사용에 정책을 집중하였다. 하지만 저화는 액면이 고액이었고 엽전의 주재료인 동의 수급이 원활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조선왕조는 저화사용이 늘지 않자 저화가치는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재정은 궁핍하였고 경제활동도 물품화폐형태로 이루어지는 등 원시경제 수준을 벗어날 수 없게 되자 주전론이 안팎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당시 육조에서는 당나라의 화폐인 개원통보의 가치를 모방하여 10돈을 1냥으로 기준하였고 화폐의 명칭을 조선통보라고 하였다. 또한 화폐 주조기관인 사섬서에서 엽전을 주조하였으면 저화에 비해 엽전의 경우 위조가 용이하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주동전률을 반포하여 엄하게 다스리기 시작했다. 이로서 조선통보는 조선 초기시대인 1425년(세종7년)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의 불교배척사상과 맞물려 삼국 및 고려시대의 숭불정책으로 만들어진 불상과 같은 불구 등도 엽전재료에 사용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백성들의 동사용도 억제시켰을 정도였다. 1406년(태종6년)을 전후로 조선은 동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군인을 지방에 파견하면서까지 동을 채취하였는데 열중이었다. 당시 일본은 기술이 열악하여 엽전을 주조할 만한 기술을 보유하지 못해서 원재료인 동을 조선에 수출하고 조선의 엽전으로 받아가는 일도 있었다.